“꼭 그래야 해? 교회 창피하게”
“꼭 그래야 해? 교회 창피하게”
  • 기독교타임즈UNION
  • 승인 2018.03.2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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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 CBS 대기자

"아픔과 부끄러움을 선택한 기자들 편에 설 것"

 

 

 

 

 

기독교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뛰다보면 일반 저널리즘에서보다 더 강하게 도전해 오는 상투적 어필이 있다.

꼭 그래야 해? 교회 창피하게”, “그래서 덕이 될 게 뭐 있어등이다.

물음을 던져보자. 저지른 것이 창피하다는 건가, 저지른 것이 알려지면 창피하다는 건가? 세속의 관점에서는 그게 그거지만 신앙인은 아니다. 저지른 것이 소문 나 창피하다는 것은 세속사회의 평가를 걱정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다. 반면에 저지른 행위 자체가 창피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를 동반하는 자기성찰이다. 이단종파에 교회를 매각했고, 권좌를 차지하는 과정은 사회의 법정에서조차 위법임을 선고받았다. 그럴 때 무엇이 창피한 건가? 책임을 지고 자리를 떠나야 한다면 그가 누구겠는가? 덕이 된 행위는 무엇이고 덕이 되지 않는 행위는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기준으로 따진다면 말이다.

 

기자의 취재 결과물을 모아 신문을 만드는 행위는 편집국 구성원들의 知的 작업이다. 교계와 교단의 메커니즘을 파악하고 흐름을 읽어나가며 논의하고 토론해 이뤄내는 집단지성에 의한 연속작업이다. 그런 연고로 발행인이 경영책임자를 어디서든 청빙하는 것과 편집국장을 임명하는 건 다른 문제다. 편집국 구성원들이 리더십의 교체를 원하는지 어떤 리더십을 원하는지 고려치 않는 것은 편집국 자체를 허무는 결과를 낳는다. KBS, MBC, YTN 등이 파국의 위기를 겪은 것도 언론 경험이 없는 사람을 데려와 발생한 것이 아니라 편집국의 본질을 이해 못한 결과이다. 더구나 거기에 정략적 의도가 개입해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부연한다면 강물은 창대하고 힘이 세도 우물을 침범할 수는 없다. 우물은 한 줌의 오염으로도 많은 이에게 치명적이니 그렇다.

 

저널리스트와 목회자는 그 책무의 토대를 소스라침에 두어야 한다. 아주 작은 불의와 탐욕일지라도 소스라치게 놀라 견딜 수 없어야 한다. 억울한 이의 호소에도 가시에 찔린 듯 깜짝 놀라야 하고, 힘없는 이들의 침묵과 고통에도 아파해야 한다. 무디고 무디어 그렇지 못하다면 자리를 떠나는 것이 이 되는 행위일 것이다. 누가 아파했는가? 누가 견딜 수 없어 했는가?

 

그래서 나는 부끄러워하고 자기 몸에 새겨지는 상처를 견뎌야 했던 노조원들의 편에 서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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