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m ‘하늘 감옥’에 갇힌 사람들
75m ‘하늘 감옥’에 갇힌 사람들
  • 정원희 기자
  • 승인 2018.03.26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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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합의 거부 맞서 135일째 굴뚝 농성

기독인들, 매주 화요일 기도회로 연대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겨울, 영하 10도 이하의 혹한이 지속됐다. 겨우내 강풍이 몰아치는 75m 상공에서 지내고, 어느덧 5개월이 다 되도록 땅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온 국민이 3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올림픽에 환호하던 때에도, 구정을 맞아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명절 연휴기간에도 이들은 80cm 폭의 차디찬 무쇠바닥 위에 몸을 누였다. 사람들은 그곳을 일컬어 ‘하늘 감옥’이라고 부른다.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두 명의 노동자가 회사의 부당 처우에 맞서 130일 넘게 농성을 벌이고 있다.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두 명의 노동자가 회사의 부당 처우에 맞서 130일 넘게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파 속 75m 굴뚝 위 생활…건강 우려

사측의 부당해고와 노사합의 거부에 맞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홍기탁·박준호 씨를 찾은 지난 2월 9일은 그들이 땅에서 발을 뗀지 90일째 되는 날이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지회 소속 노동자인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 12일, 동이 트기 전인 새벽녘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랐다. 파인텍 본사가 위치한 목동 CBS사옥 앞에서 별인 수년간의 시위에도 불구하고, 사주 및 경영진에게서 상황 개선 의지를 엿볼 수 없었던 노동조합원들이 내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한파를 앞둔 초겨울의 어느 날 그들의 굴뚝 생활이 시작됐다.

문제는 파인텍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지난 2014년에도 파인텍의 전신인 스타케미칼에서 정리 해고된 차광호 씨(현 지회장)가 구미 공장 45m 굴뚝에 올라 무려 408일의 세계 최장기 굴뚝 고공농성을 벌인 끝에 회사로부터 고용 보장 및 노조 인정, 단체 협약 등을 승계하겠다는 약속을 이끌어내고 내려온 바 있다. 그러나 승계를 위한 파인텍이라는 자회사를 세웠을 뿐 노사합의는 이행되지 않았고, 이후 노조와의 교섭을 거부하고 있는 사측의 태도에 이번에는 차 씨의 동료 두 사람이 굴뚝 위로 향하게 된 것이다. 당시 동료들의 지원 속에 고공농성을 벌였던 차 지회장은 현재 나머지 조합원 두 명과 함께 굴뚝 밑에서 천막을 치고 노숙농성 중이다.

2006년까지만 해도 한국합섬이라는 이름 아래 700여 명의 동료가 함께했지만, 찬란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12년 간 두 번이나 이름이 바뀌는 동안 이제 남은 사람이라고는 거리로 나선 다섯 명이 전부다. 매일 천막에서 굴뚝 위 동료들의 식사를 챙기고 있는 김옥배 씨는 “젊은 시절을 다 바쳐 싸우느라 결혼도 못했다. 남은 5명 중에서 3명이 총각”이라며 “미혼이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가정이 있는 대부분은 어려운 생활에 지쳐 떠났고, 우리 역시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보다 굴뚝 위 동료들의 건강을 우려했다. 계속되는 강추위 속에 아래에서는 그나마 하루 몇 시간이라도 발전기를 돌려 난방을 하고 있지만, 굴뚝 위는 단지 비바람을 막기 위한 용도의 천막과 비닐, 그리고 침낭과 담요, 핫팩에만 의지한 채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고공농성 64일차였던 지난 1월 14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와 길벗한의사회 소속 한의사가 함께 굴뚝에 올라 홍기탁·박준호 씨의 건강 상태를 점검한 결과, 그들에게서 기온 저하에 따른 감기나 저체온증 등의 증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워낙 협소한 공간에서 똑바로 눕지도 못한 채 지내다보니 목과 허리 등의 통증을 유발했다. 그마저도 벌써 두 달이 넘게 지난 만큼, 더 악화됐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김 씨는 “동료들은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라면서 “겨울도 겨울이지만, 요즘 같은 환절기가 더 걱정이다. 더 이상 몸이 상하기 전에 하루 빨리 내려오게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굴뚝 위에서 농성 중인 홍기탁·박준호 씨에게는 하루 두 번(오전 10시와 오후 5시) 밧줄을 통해 식사가 전달된다. 사진은 동료 김옥배 씨가 오후 식사를 올리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
굴뚝 위에서 농성 중인 홍기탁·박준호 씨에게는 하루 두 번(오전 10시와 오후 5시) 밧줄을 통해 식사가 전달된다. 사진은 동료 김옥배 씨가 오후 식사를 올리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

 

“약자의 편, ‘예수 따르미’로서 당연”

현재 이들의 투쟁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주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농성장 앞에서는 이웃노조와 문화예술인 단체 등이 연대하는 문화제가 열린다. 매주 화요일마다 드려지는 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개신교 대책위원회의 기도회도 그 중 하나다.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불.한.당, 성문밖교회, 영등포산업선교회, 청.사.진, 평화누리, 한국기독청년협의회 가 참여하는 개신교 대책위는 새해 들자마자 첫 기도회를 연 뒤 지금까지 열 두 차례 기도회를 이어오고 있다.

개신교 대책위는 5년 전 재능교육 사태 당시 해고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모인 감리회 목회자 및 신학생, 성도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이후 동양시멘트(현 삼표시멘트) 해고 노동자들과 연대했고, 또 다시 의기투합해 굴뚝 농성장을 찾은 것이다. 이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단지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곳을 찾아 그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뿐이다.

재능교육 사태 때부터 거리의 노동자들과 함께해오고 있는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는 “처음에는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마음이었지만, 하다 보니 어느새 이게 내 문제, 가족의 문제, 우리 교인들이 맞닥뜨릴 수도 있는 상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기독인으로서 내 행동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나 약자와 가난한 자, 소수자,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서셨던 예수님을 따라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도 단지 그곳에 섰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독인들은 중도를 지켜야 한다’, ‘기도회가 지나치게 정치적이다’라는 일부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 오히려 “왕따를 당하는 친구가 있는데 가담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하며, 자본 횡포 등 강자의 논리에 침묵하는 것은 방조가 될 수 있음을 피력했다. 이 목사는 끝으로 “그들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지 한 번만 생각해 달라”면서 주변으로 밀려난 약자들의 삭제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줄 것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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