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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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은정 기자
  • 승인 2018.03.3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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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기자
박은정 기자

 

도가니, 2005년 광주 인화학교에서 발생한 청각장애 아동 성추행 사건을 소재로 한 공지영 작가의 소설 제목이다. 소설은 인화학교 교장과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성폭행 했지만 결국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 된 사건을 다룬다.

도가니라는 단어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쇠붙이를 녹이는 그릇 혹은 흥분이나 감격으로 들끓는 상태를 뜻한다. 공지영 작가는 성폭행과 같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태연하게 일어나는 ‘광란의 도가니’를 꼬집고자 책의 제목을 ‘도가니’로 정했다.

책은 2011년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영화 속에서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이 무슨 광란의 도가니야.”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거짓과 폭력으로 가득 찬 도가니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고자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피해아이들은 수화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외침’으로 사회에 고발한다.

우리 사회는 최근 미투운동으로 ‘광란의 도가니’를 겪고 있다. 끔찍했던 성범죄 사건들로 오랜 시간 홀로 견뎌왔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수면 위에 올라왔다. 여성들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피해자가 더 당당해지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당신을 응원합니다”라고 외치며 안개로 자욱했던 사회에 희망과 기대를 표했다.

하지만 피해여성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수준은 여전히 낮다. 여성들이 피해사실을 밝히면 ‘왜 그런 옷을 입었냐’, ‘거기에 왜 갔느냐’라고 추궁하며 피해자들의 입을 다시 막는다. 힘겹게 법적공방까지 가도 피해자들은 역고소를 당하거나 무고죄로 역공을 맞는다. 피해자들의 울부짖음이 또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다. 피해자들의 아픔에 가해자가 보여주는 모습도 형편없다. 오히려 피해자를 통제하고 가해자의 권위와 지위를 지키는 데 급급하다.

타임즈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미투운동의 열기는 더욱 거세졌다. 덕분인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자가 아닌 같은 여성으로서 들어보고 고민해보는 기회가 많이 생겼다. 피해 여성들의 외침을 직접 듣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고 충격에 한동안 머리가 무거웠다.

하지만 복잡했던 고민 끝에 깨달은 점이 있다면, 사회를 도가니 속으로 빠지게 한 성범죄는 단순히 가해자의 ‘성욕구’에만 국한되지 않고 양성불평등문화, 사회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 여성들의 외침은 멈춰선 안 되며 기자로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공지영 작가가 소설 ‘도가니’를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도 한 언론사의 인턴기자가 쓴 스케치 기사 한 줄이었다. 인턴기자는 사건의 마지막 선거공판에 참석해 그때의 현장을 이렇게 기록했다.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나 또한 피해자들의 울부짖음을 놓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여성들의 목소리를 ‘걸(Girl)음(音)종이’라는 코너를 통해, 눈물로 뒤섞인 ‘광란의 도가니’를 ‘희망의 도가니’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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