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후손들의 노래
이스라엘 후손들의 노래
  • 노재신
  • 승인 2018.05.2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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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iver Us"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애굽의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요셉을 아는 바로가 있던 시대와 애굽의 백성들이 있었던 그 때에는 모든 것이 좋았다.
척박한 가나안 땅보다 비옥한 나일강의 풍요가 좋았을 것이며 바로와 애굽의 백성들과도 사이가 좋았을 것이며 또한 선대를 받기도 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후손들은 애굽에서 번창하였다.
어쩌면 이 번창은 자연스러움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는데 애굽의 비옥함과 풍요로움은 더할나위가 없는 양육의 환경이 되어 준 것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가나안의 척박한 땅에서 살아오던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애굽의 백성들보다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 탁월함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렀다.
세월은 요셉에 대한 기억도 빼앗아 갔다.
애굽에서 번창하던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오히려 애굽인들에겐 부담이 되기 시작을 하였을 것이다.

애굽 백성들과의 사이가 예전만 못해졌을 것이다.
애굽 백성들과의 관계도 예전과 달라졌다.
애굽 백성들의 선대는 사라지고 묘한 경쟁심만이 이스라엘 후손들과의 관계를 서먹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때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애굽을 떠날 것을 권면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후손들은 애굽을 떠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나그네의 신분으로 애굽에 들어 왔으나 그들은 애굽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굽 백성들과의 관계가 서먹해 졌다고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을 버리고 애굽을 떠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애굽을 떠나 자신들이 떠나온 가나안으로 돌아가 그 곳에 살고 있는 가나안인들과의 갈등도 염려하였을 것이며 가나안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낼 자신조차 없었을 지도 모른다.

생활의 풍요로움과 삶의 안락함은 이스라엘 후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잊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오늘날 한국 감리교회도 다르지 않다. 
7~90년대를 거치며 교회는 부흥하기 시작하였다. 
교회는 한국 사회의 신흥 세력이 되어 가고 있었으며 어쩌면 대도시엔 이미 주도적인 신흥 세력으로 급부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발전과 함께 교회도 양적으로 성장해 간 것이다. 
목사들은 이 풍요로움을 좋아 했으며 이 안락함은 더할나위가 없어 보이는 하나님의 은혜이자 축복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후손들의 삶이 변화된 것과 같이 또 시대가 변하였다.
몇 몇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목사들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하여 별 별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시대가 변한 것과 같이 교회도 변하였고 목사들도 변하였고 타락해 갔다.

교회는 세상의 기득권 세력이 되려 하였다.
목사는 그 기득권을 누리려 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감리)교회는 급속히 세력과 정치화 분파주의가 되었으며 귀족화 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문제가 수면에 올라오지 않았던 것은 교회와 목사들의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들이 부각이 되어 그랬을 것이다. 

법보다 은혜를 따르려 했고 세속의 정치보다 하나님의 정치를 따르려 했기 때문이리라.

개중엔 오늘날로 생각해서 참 못된 일들이 많이도 있었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세속의 갑질이 교회 안에서도 횡횡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갑질에 대하여 불만이나 대항을 하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라고 가르쳤고 믿었기 때문이며 그 시대엔 갑질조차도 당연시 되던 때였으리라.

교회는 경직화 되었고 목사들은 기득권의 갑질을 놓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가 돈으론 부요해 졌지만 복음엔 가난해져만 가게 되었다.
목사들에겐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보다 세속적인 명예와 권력과 힘을 따르는 것이 우선이 된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애굽을 떠나라는 주님의 음성이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들렸던 것과 같이 우리 감리교회안과 밖에서도 교회의 변질과 목사들의 타락을 꾸짖는 소리를 통해 회개할 것을 종용하는 하늘의 음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 소리를 들을 생각이 없었다.
아니 목사들이 그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곤 임의적으로 그 소리를 대하며 무시하였다.
목사들은 교인들의 귀를 막으려 했다. 
목사들은 교인들의 눈을 가리려 했다.

교회와 목사를 향한 세상의 소리는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향한 핍박이며 조롱이라고 왜곡을 시켰다.
그리곤 목사들 자신이 쎄련되려 했고 고상한 척을 하길 원했다.
교회와 평신도들도 외적인 모양새에 마음을 빼앗겼다. 
교회는 점점 거대화 되었고 목사들은 평신도들의 요구를 맞추기 위하여 겉치례인 학위에 전념을 하였다.

박사학위가 없으면 대형교회엔 명함도 못 내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가짜 박사들이 넘쳐나게 되었고 자격도 안되는 무늬만 박사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목회학 박사? 신학박사? 철학박사? 상담심리학 박사? 심지어 행정 박사까지 말이다.
이 모든 것이 거짓이며 이 모든 것이 타락이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멀어져 간 것이다. 

그때 떠났어야 했다.
그때 진실한 회개가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진실한 회개는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들을 포기하거나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잃을 것이 많은 목사의 자리에서 내려 온다면 어찌 살아갈 것인지를 두려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시기를 놓쳤다.
이스라엘 후손들이 애굽을 떠나야 할 시기를 놓침과 같이 말이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안밖으로 시련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련은 뭔가 방법이 틀렸기 때문이고 뭔가 구조적인 문제와 제도적인 문제가 있음으로 발생한 하자라 생각을 했다.

모든 사고는 인재라고도 한다.
천재라는 것도 이리저리 살펴보고 따지고 보면 인재라 한다.
그래서 방법과 구조와 조직 그리고 제도적인 하자만 고치면 잘 될 것이라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것은 없었다.
애굽을 점령하던지 아니면 그들의 지시를 받아야만 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애굽을 정령할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힘이 없었다.
아마 그러한 힘이 있었다면 출애굽을 하려 하지 않고 애굽을 점령하려 내란을 일으켰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삶의 여유와 풍요로움을 허락하셨을진 모르지만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인 능력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이것을 원망하는 이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군사력을 키우고 정치력도 키워야 한다고 외치는 이스라엘 후손도 있었으리라.

한국 교회도 권력을 갖으려 하고 힘을 갖으려 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과감하게 목사들이 교회의 이름으로 정당정치를 하려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치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속 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 목사와 성도가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기득권과 지도적 능력을 확고히 하자는 명분에서 말이다.
그것이 한국 사회를 하나님의 뜻으로 변화 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감리교회)교회는 정치화를 내려 놓아야 한다.
기득권을 내려 놓아야 한다.
갑질의 비인간(격)적인 행위를 내려 놓아야 한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애굽에서 탈출해야만 하는 이스라엘 후손들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회개해야 한다.
그래서 울부짖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 한다.

다시 한번 성령의 바람이 한국(감리교회)교회에 불어 오길 기도하고 기도하며 기다려야 한다.
성령은 한국(감리교회)교회와 목사들을 바로 세울 것이다. 
성령은 한국(감리교회)교회와 목사들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성령은 세속적으로 치우친 한국(감리교회)교회와 목사들을 돌이키게 할 것이다.

우리도 이스라엘 후손들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우리도 이스라엘 후손들이 기다리는 모세와 같은 지도자를 구해야 한다.
우리도 이스라엘 후손들과 같이 하늘의 응답을 위해 다시 두드려야 한다.
그러면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지혜롭게 하여 찾게 하실 것이다. 
성공회 신부였던 웨슬리가 찾았던 한국(감리교회)교회의 구원의 길을 말이다.

이제 이집트 왕자의 OST를 들으려 한다. "Deliver U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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