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와 상징은 하나님의 표적(징표)이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자 현실이 된다.
비유와 상징은 하나님의 표적(징표)이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자 현실이 된다.
  • 노재신
  • 승인 2018.05.27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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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표적인 비유와 상징

성령을 통해 하늘로부터 임하는 징표를 성경은 표적이라 하였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보내시는 비밀스런 싸인인 것이다. 이 싸인을 읽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표적은 많은 종교인들이 늘 구하는 징표이다. 

유대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예수님께 찾아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청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2,3)

'시대의 표적'이라 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시대의 표적'이라 한 것은 자연현상을 통하여 알게된 삶의 지혜(식)이자 자연현상에 대한 미래에 대한 예견인 것이다. 이러한 자연현상을 통한 예견은 과거의 시대부터로부터 다양한 모습으로 전해져 내려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이다. 지금도 이러한 '시대의 표적'은 삶의 지혜로 재생산되고 있을 것이다. 

'시대의 표적'은 자연현상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시대의 표적'은 사회 현상을 통한 예견임과 동시에 역사를 통한 예견도 포함이 된다 할 것이다. 역사는 왜 필요하며 역사를 알아야 할 당위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의 사건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보기 위한 것이다. 

요즘 도현종 목사님이 역사를 통해 감리교회를 향한 이 '시대의 표적'을 역설하고 계시다. 
어쩌면 이러한 역사 이해와 해석은 보기 나름이고 해석하기 나름이며 때에 따라선 과거 역사에 대한 다양한 정보의 양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때에 따라선 그리고 경우에 따라선 한 쪽으로 치우친 역사해석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며 지나친 연관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 주장도 틀렸다 할 수 없다.

역사란 어떤 시각으로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이해되고 해석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시대의 표적'도 마찬가지이다. 하늘로부터 임하는 표적(징표)도 그런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어떤 이들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역사이자 시작이라 하였다.
그러나 헤롯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반가와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지식은 그리스도의 탄생이 베들레헴에서 있음도 알만한 놀라움 되었다.

반면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찾아왔다 하였다. 
정확한 장소도 몰랐기에 헤롯의 왕궁을 찾아 가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하늘의 별을 보고 동방 어디에선가 베들레헴 아니 유대를 찾아 온다는 것 조차도 우리의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유대땅을 찾아 온 동방박사들의 여행은 천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런지도 모른다. 

그렇다. 천운... 이것이 무엇인가? 
하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하늘의 뜻을 읽을 수만 있다면 천운을 따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기에서 과연 천운과 같은 일들을 맞이하게 된 이들은 진정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거나 읽고 그 천운을 얻게 된 것일까? 아니다.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고 그 된 일이 하도 신비스러운 일이기에 천운이라 할 뿐이다. 동방박사들도 예수님을 알고 찾아 왔을까 아니다 단지 귀한 왕이 태어날 것이란 하늘의 징표(표적)를 보고 따라왔을 뿐이다.

그러니 천운이라 표현하는 것은 '시대의 표적'을 읽고 따라온 것이 아니라 살다보니 경험케 된 것을 천운이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반명 동방박사는 하늘의 표적(별)으로 보았으며 천운과 같은 일들을 경험하게 된 것이라 할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와 해석이 엉뚱하거나 쌩뚱맞거나 황당함이 된다면 사람들은 그 천운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네가 그렇게 생각하니 그런거 뿐이야! 그것은 천운이 아니라 우연히 일어난 것일뿐이야!"라 할 것이다. 

이 말이 틀린 말일까? 이 말도 전혀 틀리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미래를 알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다보니 미래의 시간과 사건을 만나게 되며 미래의 사건이 현재의 일로 일어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어떤 이들에겐 미래는 우연이라는 순간을 통하여 나타나는 또 다른 현실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우연이라는 순간의 시간을 통해 미래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미래는 하나님(하늘)의 뜻에 의해 이루어 지는 것이라 생각을 하고 믿는다. 결국 같은 상황과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어떤 이들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네.... 라고 하거나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이네.... 할 뿐이다. 

과연 누구의 이해와 해석이 맞을까? 
이러한 이해와 해석에 대하여 누구의 판단이 옳다 할 그 누군가가 존재할까? 세상엔 그 누구도 이것에 대하여 이렇다할 답을 주거나 판단을 할 존재가 없다. 단 또 다시 예측은 가능할 것이다. 예측은 100%의 정확성이 없다.그러니 예측은 참고사항일뿐 정답이라 할수 없다. 그러기에 이러한 모든 일들에 대하여 시비를 가려 줄 존재가 있다면 그 분을 세상은 신(하나님)이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귀납적인 방법에 의한 해석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시대의 표적)을 통해 그 모든 이들을 있게 한 절대적 존재로써의 신을 찾음이다.

이와 동일한 일들을 연역적으로 해석한다면 이렇게 해석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들에 대하여 시비를 가리는 분이 계시는 그 분이 바로 하나님(신)이시다. 그 하나님(신)은 세상의 창조자요 주관자로써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신)의 뜻을 담고 계시며 또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하나님(신)의 뜻을 그 곳에 감추어 두신다. 이 하나님의 뜻이 감춰져 있기에 보통 사람들에겐 비밀이지만 이 비밀을 아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이 일들(시대의 표적)을 통하여 하나님(신)의 뜻을 이해하거나 읽을 수 있는 이들이 있다. 

연역적인 방법절대적 존재로서의 신(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의 모든 일들(시대의 표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우연이라 말하지 않고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신)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을 한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은 천운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적과 같은 놀라운 일들만이 천운이 아니라 우리가 숨을 쉬는 것도 천운이며 우리가 눈을 뜨는 것도 천운이며 하루의 낮과 밤이 변하는 것 또한 천운이다. 

이 천운은 어쩌면 우리들에겐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러나 이 기적과도 같은 일들을 만들어 가는 것은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니 이 또한 하나님(신)의 뜻이며 역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는 하나님(신)의 뜻에 의해 결정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신)의 뜻에 의해 결정된 미래의 일들을 살아갈 뿐이라 할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 하나님(신)을 다른 이름으로 해석할지도 모른다. 
'도'라고 부를 지도 모르고 'GOD'라 부를 지도 모르며 'THEOS'라 하거나 야훼라 하거나 여호와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따라 갖가지의 신(절대자)의 이름을 붙여 부르거나 또 수없이 많은 신들의 이름으로 부르기도하고 이 미래를 결정하는 그 절대적 존재의 이름에 대하여 알지 못함으로 알지 못하는 신(미신)이라 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종교이다. 이것이 인간의 철학이 되거나 사상이 되며 가치관이 되기도 한다.

과거의 모든 일들을 이루신 그 분이 또한 현재를 이루고 계시며 또 미래의 일들도 당신의 뜻으로 결정하고 행하실 것이니 우리는 그 존재에 대하여 창조자여 섭리와 경륜자이시며 주관자로써 기묘와 모사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을 통하여 증거되어진 하나님이시다. 그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처음과 나중이 되시기도 하며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계실 영이시라 부르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신)의 존재(누구이신가?)를 알고 그 하나님에 의해 모든 세상의 일들을 이해하고 해석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계시라 말하기도 한다.

이제 그 절대적인 분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대하여 집착하지 말고 그 분이 이루시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납적이든 연역적이든 시대의 표적들에 대하여 이해하거나 해석을 하는 이러한 사람을 우리는 기독자라 하거나 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자라 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인라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유대인이 나음이 무엇인가? 
그들은 먼저 들어 아는 것을 믿고 행한다. 이방인이 유대인보다 못함이 무엇인가? 이방인은 유대인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하여 전해 듣고 믿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증거하기를 처음된 자가 나중이 되고 나중된 자가 처음이 되는 일들이 많을 것이라 하였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선 유대인의 나음이 없으며 이방이이 못함도 없는 것이다. 
다만 누가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냐? 누가 진실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들을 이해하고 해석하여 행하는 가가 중요한 것이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또는 대제사장과 장로 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임하는 징표(표적)를 이해하고 읽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감리교회 안엔 감신, 목신, 협신 출신의 목회자들이 존재한다. 
누가 더 나음일까? 역사적 시간상으로 본다면 감신, 목신, 협성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준을 어떻게 두는냐에 따라서 그 나음은 달라질 것이다. 나는 누가 더 나으냐는 그 기준점을 세상에 두지 않는다. 누가 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가? 누가 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해석할수 있는가에 두고 싶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가에 그 기준을 두고 싶다. 

그러므로 이 기준으로 본다면 학연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신실한 믿음과 성실한 믿음의 삶을 보이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학연으로 나음을 판단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으로 판단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은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며 뼈와 골수까지도 쪼개는 바가 되시는 분이시니 절대 그 판단에 실수가 없다. 하나님의 판단은 100% 정확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정확성을 신뢰함으로 이것을 미래에 대한 지혜 즉 예언이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거짓을 정죄하시며 외식을 미워하실 뿐만 아니라 교만을 죄없다 하지 않으실 것이며 육체의 소욕으로 행하는 모든 것, 그것이 99% 정확성을 갖고 있는 예견이라 하여도 나머지 1%의 부정확성에 대하여 반듯이 심판하실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100% 정확하게 심판하실 주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겐 그 심판에서 구원받게 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거룩한 영을 통하여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신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길 원하심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이 그 분(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통하여 보여주고 계시며 세상의 모든 일들(시대의 표적)을 통하여 들려주신다. 다만 그 모든 하나님의 사랑은 감춰진 비밀이 되었다. 이 비밀이 됨은 하나님이 감추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눈이 흐려지고 귀가 어두어져 보지 못함이며 듣지 못함일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어두워진 눈과 귀를 회복시켜 주시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도록 감동하여 주신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은 어느 순간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행의 은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어리석은 사람들이 똑똑한 척을 함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어리석다 하며 거룩한 영의 감화와 감동을 유치하다 하며 썩어지지 않을 하나님의 형상을 썩어질 사람(철학,지식,사상,이념)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어 섬김으로 하나님의 뜻이 숨겨진 비밀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시대의 표적'을 보지만 이해하거나 읽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시대의 표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이들(선지자)을 도리어 미쳤다 하거나 광신자라 하거나 이단 사이비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로마인들에게 배척을 받음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대 최고의 지성을 갖고 있다 할 수 있는 종교인이었던 유대인들의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배척을 받은 것이다. 선지자는 언제나 자신의 교향(신앙의 터전 - 종교)에서 배척을 받아야만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음이다. 

숨겨진 비밀....
이것이 하늘로부터 임하는 세상의 모든 일(현실)들이 된다. 

세상의 모든 일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는 '시대의 표적'이 된다. 

'시대의 표적'
이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하나님의 뜻이자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다. 

이 하나님의 뜻과 역사는 또 다시 어리석은 인간에 의해 감춰진 비밀이 되고 하늘로 부터 임하는 표적(징표)이 되었다. 그러니 주님은 요나(과거)의 표적(역사)만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 보여줄 표적(징표)이라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과거와 미래를 포함한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 현실은 또 다른 표적(징표)가 된다. 그러나 그 표적은 감춰진 비밀이 됨으로 비유가 되고 상징이 된다. 비유와 상징은 시의 언어이기도 하고 영의 언어이기도 하며 하나님(하늘)의 뜻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비록 이 비유와 상징을 정확하게 인지(이해, 해석)하지 못한다 하여도 비유는 또 다시 이 세상에 이루어질 역사가 되고 상징은 우리 삶의 현장인 현실이 되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비유와 상징은 하나님의 표적(징표)이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자 현실이 된다.

이 비유와 상징이 곧 진실한 믿음의 사람에겐 이상이 되고 산 믿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한 믿음의 사람은 현실(시대의 표적)을 통해 비유와 상징을 해석하고 비유(예언)와 상징(계시)으로 감춰진 비밀을 현실로 이해하고 해석하게 됨으로써 하늘로 부터 임한 영적인 이상(꿈, 환상, 예언)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가능케 됨은 인간에게 있음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천운-시대의 표적)들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있음이다. 그러기에 거룩한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다는 것은 시대의 표적(꿈, 환상, 예언)을 하나님의 뜻으로 읽고 해석하는 것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글을 마치며 이 찬양을 들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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